조선어 학회 사건.

1942년 10월 1일부터 1943년 4월 1일까지 사전 편찬 위원과 재정보조자 33명을 모두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를 적용하여 16명은 기소, 12명은 기소유예, 나머지는 석방하였다. 기소된 16명 중 이윤재, 한징은 심한 고문과 추위·배고픔으로 옥에서 죽고, 장지영, 정열모는 공소 소멸로 석방, 12명이 공판에 넘어갔다. 1944년 12월부터 1945년 1월까지 9차에 걸친 재판에서 이극로 징역 6년, 최현배 징역 4년, 이희승 징역 2년 6월, 정인승, 정태진 징역 2년, 김법린, 이중화, 이우식, 김양수, 김도연, 이인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장현식 무죄가 각각 선고했고, 광복으로 1945년 8월 17일 모두 풀려 나왔다.

{한글 학회} 자료: 수난 시기/조선어 학회 수난을 당한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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